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혜경궁 홍씨 (문단 편집) === 사후 === [[1854년]](철종 5년), '''‘유정(裕靖)’'''의 [[존호]]가 추가되었다.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 대에 [[1899년]](광무 3년) 8월 3일에 경연특진관 서상조(徐相祖)의 상소로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할 것을 청하였다.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황제]]가 승인하여 남편 [[사도세자]]가 '장종(莊宗)'으로 추존되자 혜경궁은 '헌경왕후(獻敬王后)'로 추존되었고 [[대한제국]] 성립 후 다시 한 번 장종이 '장조(莊祖)'로 [[대한제국]] [[황제]]에 재추존되면서 함께 '헌경의황후(獻敬懿皇后)'로 높여졌다. [[시호]]는 ‘'''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의황후'''(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懿皇后)’이다. 그러나 그녀는 손자 [[순조]]의 치세에도 [[왕비]]로 [[추존]]되지 못했는데 생전에 그리도 싫어하던 [[은신군]]의 [[남연군|양자]]의 [[고종(대한제국)|손자]]에 의해 [[왕비]]를 뛰어넘어 [[황후]]로 추존되었음이 [[역사]]의 얄궂음이라 하겠다. 다만,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은 [[효명세자|문조]](文祖)의 [[양자(가족)|양자]]로 입적되어 즉위하였으므로 법적으로는 [[효장세자]]가 고조할아버지이다. [[나라]]를 세우거나 [[칭제건원|칭제]]를 했을 때 4대조까지 [[추존]]하는 관례를 따르면 [[사도세자]]까지 [[추존]]함이 맞다. 능은 [[경기도]] [[화성시]] [[안녕동]]에 위치한 '''[[융건릉|융릉]](隆陵)'''으로 남편인 [[사도세자|장조]]와 함께 '합장릉의 형식'으로 묻혀 있으며, 인근에는 아들 [[정조(조선)|정조]]와 며느리인 [[효의왕후]]의 능인 [[건릉]](健陵)도 함께 위치하여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